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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아르떼 (2020)

gracenmose 2021. 3. 31.

책, 이게 뭐라고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 지음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지음

1장 - 말하는 작가의 탄생

2장 - 책을 읽는 일, 책에 대해 말하는 일

3장 - 말하기-듣기의 세계에서 만난 작가들

4장 - 그럼에도 계속 읽고 쓴다는 것

 

장강명이라는 소설가는 사실 모르던 사람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보게 된 이웃의 '5년 만의 신혼여행' 책 소개를 보고 알게 된 작가다. 관심을 가지게 된 사유는 아주 단순하다. 공학도(공돌이)였던 그가 펜을 잡은 것에 대한 호기심. 호기심이라는 것이 딱히 이과 성향이라고 더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돌이면서 글을 쓰는 (매일 가족 글쓰기를 하는 중) 입장과 최근에 책을 자주 보게 되니 무언가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내가 모르는 작가가 내가 모르던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것이다. 초반부에는 이 사람 굉장히 거만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알쓸신잡의 김영하 자리에 자신이 나갔으면 한다고.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작가도 그런 프로그램에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전공이 '도시공학'이다. 이 작가의 이력은 공학 전공 ⇒ 건설회사 근무 ⇒ 신문 기자 ⇒ 소설가. 재미있지 않은가?


p. 41
쓰는 인간들의 영토가 사라지는 것은, 어느 정도 현대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기는 쓰기보다, 듣기는 읽기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다. 말하기와 듣기는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더 오래된 행위다. 보다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넓은 영역의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한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반응한다.

 

읽다 보니, 이 책도 결국 이 작가의 글쓰기, 읽기에 대한 의견으로 많이 들어간다. 팟캐스트는 들어보지 않았으니 그 부분보다는 이 사람의 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더 눈에 들어온다. 블로그에 올린 많은 책들이 최근 이 주제에 너무 치우쳐 있지만, 여러 사람의 관점을 보는 것은 항상 흥미롭다. 하지만, 모든 작가들의 결론은 비슷한 것 같다.

 

p. 48
더구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하게 된다. 말은 상황에 좌우된다. 그래서 말하는 인간은 쓰는 인간보다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사람은 읽고 쓰기를 통해서도, 말하고 듣기를 통해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p. 54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에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아무래도 말을 하는 팟캐스트를 하면서 글을 쓰니, 말하고 듣기와 읽기와 쓰기의 차이를 이 작가는 예의와 윤리의 차이로 요약했다. 이 부분 정도까지 책을 읽을 때는 사실 잘 읽히지 않았었다. 뭔가 나는 똑똑한 작가요. 내 말을 잘 새겨들으라는 느낌이..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이 작가의 문체에 공돌이 특유의 그 느낌이 묻어 있어서 잘 읽혀지게 됐던 것 같다. 그냥 공감대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사실 어휘력이 딸려서 표현을 못하는게 맞겠지..)

 

p. 89-90 (구글 스프레드 예시)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해서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 
같은 내용에 대해 의견이 있으면 가로로 열을 추가했는데, 보통 5-6개. 많으면 10개까지도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래로는 보통 100행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팟캐스트를 진행한 것이다.
p. 97
처음에는 책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번지는 것에 당황했다. 우리가 너무 수다스럽고 사생활 털어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궁금했다. 그러다 머지않아 이게 여러 독서 모임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팟캐스트를 하면서, 책에 대해 진행자들이 먼저 의견을 교환한 방식이다. 엑셀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생각들을 나누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게다가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오픈하게 된다. 

 

p. 113
웹문서에는 시작도 끝도 순서도 없다. 늘 화면 어느 구석에 하이퍼링크가 있으며, 본문이 재미없을 때 언제라도 그 링크를 클릭해 다른 문서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으로 인해 웹문서를 대하는 사람은 눈앞의 글줄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쫓기듯 쉴 새 없이 클릭하며 맥락 없고 단편적인 정보의 파도 위를 '서핑'하게 된다. 그것은 독서라기보다는 케이블 TV 리모컨 버튼을 끊임없이 누르며 채널을 돌리는 행동에 가깝다. (이 비유는 니콜라스 카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나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뜨끔한 구석이 있다. 인터넷으로 보는 글은 조금만 지루해도 쉽게 떠나갈 수 있다. 또한 그렇게 집중해서 보지도 않는다.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서 경험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어떤 분이 현대차에서 나온 싼타페 페이스리프트의 소식을 전하는 글을 올렸다. 그 분은 달라진 외관을 비교하기 위해 페이스리프트 된 모델과 이전 모델의 사진을 나란히 놓은 것들을 많이 올렸다. 그중 리어램프의 변화를 설명하다가, 한 사진 밑에는 어느 것이 이전 모델이고 어느 것이 신형인지 써 놓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것이 신형이고 구형인지 정답을 맞추는 분께는 기프티콘을 선물하겠다는 퀴즈를 적었다.

그 글에는 100여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누가 그 정답을 맞췄나 보려고 댓글까지 보는데, 앞에 40여 개의 댓글에 아무도 정답을 안 달았다. 보고 싶은 것만 재빠르게 캐치해 버리고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웹서핑의 묘미다. 

그런 속성을 잘 알기에 구글에서 그렇게 SEO 를 잘하라고 하는 것인가도 싶다. 어차피 사람들은 키워드만 휘리릭 볼 거니, 기왕 글을 쓸 거면 그거라도 빠르게 볼 수 있게 쓰라는 뜻 아닌가? 지금 쓰는 이런 식의 책 후기는 SEO 관점에서는 빵점이다.

 

p. 154
(1)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행위이므로 글을 쓰면 쓸수록 더 나은 인간이 된다.
(2) 우리는 읽는 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아름다운 인간이 된다. 
신형철 평론가의 장강명이 다시 요약을 한다.
(3) 문학은 간접 체험을 제공하므로 사람은 독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간접 체험에는 한계가 있다. ⇒ 결정적인 도움은 안 되지만 시뮬레이션 정도는 된다.

 

호흡이 그렇게 길지 않은 에세이 책들만 주로 보다가, 최근에 소설을 하나 읽었다. 장편소설 같은 긴 호흡의 책을 읽으면 간접 체험을 통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느낌이다. 스웨덴 기사가 등장하는 소설인데, 잠시 나를 유럽의 어느 영주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가 온 느낌이다. 

 

p. 180
나는 시집이나 소설 뒤에 해설을 붙이는 것이 탐탁지 않고, 비평의 역할을 묻는 것은 문학이나 예술의 역할을 묻는 것만큼이나 별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현대 소설에 대해서는 전문 평론가의 비평보다 일반 독자의 솔직한 리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이 영역이 활발해져야 대중문학, 나아가서 한국문학계 전체가 살아날 거라고 믿고 있다. 

 

나도 이 부분은 공감간다. 소설 뒤에 해설글 같은 게 붙은 경우가 많은데, 대체적으로 그냥 주저리주저리 느낌이다. 너무 짧게 쓰기 미안하니까 괜히 길게 양만 늘린 듯한 그런 해설은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블로그에서 보는 책 후기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본 사람들의 짧은 평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p. 191-192
외국에 나갈 때마다 공항 서점에서 소설 코너만큼이나 넓은 논픽션 코너를 보며 혼자 부러워한다. 한국에서는 그 자리를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처럼 논픽션 소재가 넘쳐 나는 나라도 흔치 않을 텐데.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성적인 위로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도 서툰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야박한 평가일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이 소설가의 작품 '한국이 싫어서'를 읽어보니 왜 그런 책을 썼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p. 270
처음에 독서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겠다고 나선 이유는 앞서 밝힌 대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다 보니 애정이 깊이 들었고, 내가 정성을 쏟는 이 일에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보는(듣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독서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p. 301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개별적인 길을 걷는다. 아니 자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간다고 표현하는 편이 옳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발견하고, 동시에 쌓아 올린다.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이다. 
말하자면 독서 그 자체만큼이나 독서의 전 단계가 중요하다. 아이들이 '나는 무슨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고민하도록 해줘야 한다. 표지가 예쁜 책과 유명인이 쓴 책과 줄거리가 재미있을 것 같은 책 사이에 갈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숙고 끝에 내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경험이, 어린이용으로 개작된 고전을 읽고 얻는 고만고만한 교훈보다 훨씬 귀중하다. 세상에 그렇게 안전한 실패도 드물 것이다. 기껏 해봐야 약간의 시간 낭비 정도다.

 

비단, 아이 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 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최근 적었던 김영하 작가의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제목만 보고 끌려서 골랐던 책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냥 안 읽으면 된다. 잠깐 읽은 그 시간만 낭비한 것뿐.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이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

👉 관련글: 말하다 , 김영하 / 문학동네 (2015)

 

최근 EBS에서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의 결론은 아이가 어릴 때는 책을 소리 내서 많이 보는 것이 좋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자란 아이는 자신이 흥미를 가진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어른도 마찬가지. 아래 링크의 문해력 테스트를 한 번 해 보시라. 그리고 자신의 문해력 수준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당황할 것이다.

- EBS 문해력 테스트 링크


[다른 책 소개]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2019)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 문학동네 (2019)

어른의 어휘력 , 유선경 지음 / 앤의 서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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