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 / 문학동네 (2015)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모든 것이 '털리는' 저성장 시대, 감성 근육으로 다져진 영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김영하 작가의 '보다', '말하다', '읽다' 이렇게 3개의 주제로 쓴 산문집의 한 책이다. 말하다는 본인이 지금까지 해 왔던 인터뷰나 강연, 대담 같은 것을 글로 옮긴 것. 이곳저곳에서 강연이나 매거진 인터뷰도 많이 했을 텐데 그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말하다'이지만 내용을 읽다 보면 '쓰다'로 많이 연결이 된다. 말을 글로 옮기는 것이 쓰는 것의 첫 출발점인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책 후기에 언급 - 어른의 어휘력 / 유선경 편 확인) 이 책의 주제인 말하다는 결국 글쓰기와 바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p. 23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쉽다면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자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류의 책들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들이 성공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이 해 왔던 방법이 성공을 이루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성공한 사람이 해 왔던 방식이라도 따라가는 게 맞기는 하지만, 똑같이 한다고 그들처럼 성공할 수는 없는 것. 책이 팔린 만큼 성공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에 공감을 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나만 뒤쳐지는 것이니 '자기 계발'은 항상 노력해야 한다.
p. 33
예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오감으로 글쓰기'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어렸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쓰게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학생들이 시각적인 기억에만 의존해 건조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오감을 다 표현해 다시 써보라고 합니다. ... 일단 오감을 이용해 글을 쓰면 글 자체가 좋아집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시각만 이용해서 글을 쓸 때보다 훨씬 깊게 그때의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설가들의 글들이 좋은 이유가 이것에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보통 눈으로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기 때문에 시각적인 내용만 주로 쓴다. 오감을 다 표현해서 써 보면 글이 다르게 써지지 않을까 싶다. 바로 적용을 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p. 49
우리는 왜 아직도 글이라는 것을 쓰고 있을까요? 왜 그만두지 않고 있을까요? ... 황석영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처럼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입니다. 꾹 참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묵묵히 해야 겨우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게 글쓰기입니다.
p. 57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김영하 작가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와서 강연을 한 것을 한 번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해당 영상을 찾아서 위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책에 다시 글로 옮겨 적은 것이 훨씬 더 몰입감이 있고 좋다. 작가라서 말하기보다는 글쓰기 실력이 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집중해서 영상을 본 게 아니어서 그럴까는 잘 모르겠다.)
p. 65
누구나 남의 글을 비판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싶은 유혹이 들죠. 그런데 남의 글을 비판하다보면 그 비판의 언어가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남을 칭찬하고 추어주면 그 말들 역시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제가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빨간 펜을 버리고 '참 잘했어요' 고무인을 준비하시라는 겁니다. .... 자기 감상과 자기 즐거움 이런 것에 대해 표현한 글을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막 그어버리면 다시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이죠.
p. 67
... 과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는 기성 작가 작품의 필사를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안 쓰는 걸로 반항을 하게 됩니다. 반항은 젊은 이의 본성이니까요. 학교에서 자꾸 쓰라고 하니까, 안 쓰는 걸로 반항하고, 술 먹고 깽판 치다가 졸업하면 써놓은 게 없어요. 그러니 완성된 소설을 강요하기보다는, 인물 묘사 열심히 하고 책 많이 읽으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이에요.
힘들게 글을 썼는데, 잘 썼다는 말보다 이게 어떻다 저게 어떻다고 하면 글쓰기가 싫어질 수 밖에 없다. 먼저 칭찬을 하고 조금씩 개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도 지적을 안 해주면 자아도취에 빠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글, 문장을 항상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글에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보면 정말 잘 썼다고 생각될 때가 가끔 있다. 그건 큰 착각일 수도 있다. 자신의 글에 사랑에 빠지면 누가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어도 안 들어 버리는 독선에 빠져버릴 수 있다.
p. 8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 제가 권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간단해요. 자기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베스트 10을 한번 적어보는 거예요. ... 그 책을 다시 읽는 겁니다.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p. 120~121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이야기가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에요.
어떤 글은 미사여구로 잘 꾸며져 있고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제가 군대생활을 헌병대 수사과에서 했는데, 영창 수감자들의 일기를 매일 받아서 책으로 편집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떤 수감자들이 글을 잘 쓰는가 하면 중형을 받은 범죄자들이었어요. 군대에 와서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중형에 처해진 수감자가 두 명 있었는데, 그들이 글을 제일 잘 썼어요. 다른 이들은 의무적으로 쓰라고 하니까 반성문처럼 썼는데, 그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어요.
...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책을 안 보던 사람이 책을 고르기 어려울 때 써 보라고 하며 이야기 한 방법이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시 읽어보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언젠가 해 봐야겠다 생각한다.
중범죄를 저지른 죄수가 쓴 글이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었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다른 책 '보다'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는 진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p. 134
저는 글이 가진 매력은 세계와 인간 사이에 흥미로운 매개를 설정하는데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쓰면 그 순간 글이 실제의 세계를 대신하잖아요. ...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써라.' 그랬더니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아니 글쓰기가 즐거울 때도 있냐, 이러시더군요.
... 저는 글쓰기가 가진 이런 해방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제도교육에서 글쓰기라고 하는 것은 체계적으로 해방감을 죽이는 것입니다. ...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은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때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예요. 저는 거기서 기본적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해방감.
p. 181
백 명의 독자가 있따면 백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 백 개의 세계는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읽은 책이 다르고, 설령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그것에 대한 기억과 감상이 다릅니다. 자기 것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고유한 나, 누구에게도 털리지 않는 내면을 가진 나를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서의 독서, 그렇게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쓰라는 말이 참 좋았다. 기왕하는 블로그에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사이버에서 가지는 나의 '부캐'는 기왕이면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현실은 어렵고 힘들어도 블로그에서는 즐거운 내가 되기 위해 글을 써 나가도록 해야겠다.
블로그를 하면서 다른 블로그들도 많이 보게 된다. 무엇인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더라도 블로그를 하기 전과 후의 글을 보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사람마다 같은 것을 봐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고,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고 전달하는 방식도 다르다.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고 본받으려고 하고 때로는 모방해 보려고도 하고 있다. 그렇게 배우면서 나도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언급된 강의들이 참 많이 있어서 영상을 찾아봤지만 못 찾는 것들이 많이 있어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부터 손에 잡혀 보기는 했지만 다른 책인 '보다'와 '읽다'도 보고 있는 중이다. 글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 역시 대단한 문장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 더 많이 실린 다른 책을 보니, 그런 능력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소설보다는 이런 글로 보는 게 더 좋다고 하면 소설가에게는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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