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 , 유선경 지음 / 앤의 서재 (2020)
어른의 어휘력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책 읽기, 글쓰기, 말하기, 공감, 소통도 어휘력이 먼저다.
지금, 우리가 다시 어휘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작가 소개
유선경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한 것은 상상, 공상, 망상. 일곱 살 때부터 멈춘 적 없는 것은 책 읽기와 글쓰기, 세상 구경. 그것은 작가가 떠나지 않고 작가를 떠나지 않은 유일한 꿈, 위로, 그리고 감옥이었다.
3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으며, 1993년부터 라디오 방송에서 글을 썼다. 일주일에 5권 이상 책을 읽는 다독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면서 어휘력 부족이 단순히 국어능력 문제가 아니며 얼마나 일상에 커다란 불편을 가져오는지 깨닫는다. 지금 우리에겐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작가는 어휘력의 쓸모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 책에 담았다. (후략)
여는 글 -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적지 않다. 허균의 홍길동처럼 서자라서가 아니다. 마땅한 어휘를 떠올리지 못해서다.
여는 글의 첫 문단을 읽자마자 뒤통수를 쎄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최근 읽었던 고미숙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일반인임에도 작가가 되기 위한 책을 쓴 김태윤 님의 책에서도 느꼈지만 표현의 한계는 어디서 생기는지 생각을 해 보면, 적절한 어휘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책의 곳곳에 구구절절 머리 속에 콕 박히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이번에는 분량이 좀 되지만, 여러 곳을 옮겨와 적어본다.
본문 발췌
p. 17-18
"책을 읽고 싶어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서 읽기 힘들어." (중략)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래"
(중략) 대학 나와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휘력 부족이라는 소견 따위나 듣다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휘력이 부족하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드니까 책장이 넘어가질 않고, 책장이 넘어가질 않으니까 졸린다. ...
p. 25-26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라 당장 이해하기 힘들어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군.'하는 식의 감(感)을 얻는다. 신비로운 일이다.
p. 58-59
관성이나 타성은 건성이나 비슷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반대말은 '관심'이다. 나는 사람이 제일 가지기 힘든 것이 관심이라 여긴다. 강퍅할 때는 온통 자기만으로 가득 차 깃털 한 개조차 꽂을 데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 안에 다른 무엇을 들이는 게 쉽겠는가. 대수롭지 않은 주변과 일상이라면 더욱 데면데면하다. 옆에 있어도 옆에 없고 봐도 본 게 아니며 들어도 들은 적 없다.
.... 빌려온 남의 눈이 아니라 내 눈으로 대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신비와 환희에 가득 찬 기쁨을 맛보며 오롯이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표현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동시에 깨달을 것이다. 자신의 어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어떻게든 표현하고 시어 아름답다, 놀랍다, 멋지다, 좋다 등 알고 있는 찬탄의 어휘를 모조리 동원해도 입 안이 빈 동굴처럼 허전하다. 그리하여 압도적인 풍경 앞에 선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마는 것처럼 기껏 이런 말밖에 못하는 것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 그런데 솔직히 말해보자. 그 이상의 언어를 활용하길 회피한 건 아닌지.
p. 66
두꺼운 양장본의 중간 윗부분에는 통상 가는 끈이 갈피에 드리워 있는데 읽던 부분을 표시하는 용도로 쓴다. 이 끈의 명칭은 '보람줄'이다. 보람은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가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일의 가치'를 나타낼 때 주로 쓰지만 '약간 드러나 보이는 표적', '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지 않기 위해서 표를 해둠, 또는 그런 표적'도 가리키며 동사로 '보람하다'는 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어버리지 않으려 표를 해둔다는 것이다.
p. 93
사람은 자기 세계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We cannot think what we cannot think)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반대말은 주장이다.
p. 142
하늘 아래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한들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말'과 '글'이다. 콘텐츠 형태가 어떻든 말과 글이 빠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책을 읽지 않으면서 가장 많이 말과 글을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이른바 '혼족'이라 불리는 1인 가구의 급증과 같은 시대에 놓인 것이 과연 우연일까.
p. 162
밥을 좋아하진 않아도 눌은밥은 좋아했는데 서울 사람들이 누룽지라 하고 눌은밥은 모른다고 해서 누룽지가 표준어고 눌은밥이 사투리인줄 알았더니 웬걸!
눌은밥: (명사)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에 물을 부어 불려서 긁은 밥
누룽지: 눌은밥의 비표준어
p. 182
간혹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는데 어색한 문장이 있다. 어디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입으로 소리내 읽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호흡에 읽기 어려운 문장은 분리하고 입에 붙지 않는 어색한 조사는 수정하거나 삭제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접속사가 필요하다는 선입견을 버리면 간결해지고 힘이 붙는다. ... 문장은 완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끔 쓰다 만 듯한 문장으로 멋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고수들만 실현할 수 있는 멋이다. 쓰다 만 것처럼 보여다 다 쓴 문장으로 말이다.
p. 186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분리한다는 점과 주어와 시점을 챙기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와 시점만 잘 챙겨도 웬만한 문장은 완성할 수 있다.
p. 192
이러한 이유로 글을 잘 쓰려면 "문장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걷어내라."는 조언을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으나 영어 등 서양 언어에 해당하는 조언이다. 우리말에서는 "수식어를 남발하지 마라."해야 정확하다. 우리말에서는 부사는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지만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로 동사와 함께 용언*이다. 형용사를 쓰지 않으면 아예 문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겨웅가 많다.
*용언: 문장에서 서술어의 기능을 하는 동사, 형용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
p. 205
주제와 상황, 대상에 따라 다른 다양한 틀을 익힌 후에는 어떤 요소를 어디에 배치할지 계산하는데, 이를 구성이라 한다.
구성이 잘못된 글은 있어도 구성이 없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문자메세지를 보내거나 SNS에 글을 올릴 때조차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구성에 신경을 쓴다. 어휘를 고르는 것보다 구성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더 공들일 때가 많다. 같은 어히나 문장이라도 구성에 따라 글이 주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나 환호하는 '반전'도 그 구성의 힘이다.
p. 247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1년간 성인이 읽은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 책 읽은 시간은 평일 31.8분이다. 참고로 2015년 UN조사에서 미국인 연간 독서량은 79.2권, 일본인 73.2권, 프랑스인 70.8권으로 한국인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독서량 166위, 이 수치는 무엇을 가리킬까. 한국 학생 열 명 중 세 명은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 열에 일곱은 글을 일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p. 265
"어떤 어휘를 써야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갈등하고 고민하는 부분이다. ... 그러나 한번쯤 그 당연한 상식을 뒤집어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하다.
"고정된 어휘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
p. 273
낱말을 뒤살피고 음미하면 뇌의 뉴런이 새로운 연결망을 생성한다. 그 낱말에 어울리는, 혹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아이러니한 경험이나 생각이 떠오른다. 붙잡아 글로 앉혀보자. 글로 쓴 어휘는 자전거 타기나 수영처럼 장기 기억이 되어 필요할 때 수월히 활용할 수 있다.
p. 299
한글 모음 글꼴의 기본이 되는 3요소는 '·', 'ㅡ', 'ㅣ'. 각각 둥근 하늘(우주), 평편한 땅, 서 있는 사람을 형상화했다. 단순히 점 하나를 찍어서 뜻이 달라지는게 아니라 하늘(우주)을 그렸기에 그토록 달라질 수 있는 거다. 남이 님이 되면 우주가 새로 열리는 것 같고 님이 남이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 않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하늘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상이 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돈다.
마지막으로
어휘력 (語彙力) -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
낱말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낱말을 뒤살펴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글눈을 뜨고 말귀가 트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그런 후의 세상은 이전의 세상보다 훨씬 크고 새로울 것이다.
글쓰기로 밥 벌어 먹고 살것도 아닌데 글쓰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반문할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글은 안써도 말을 안하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것을 글로 옮겨 적어 놓은게 글쓰기일 뿐이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말을 글로 많이 옮겨 쓰는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글을 쓸 때 문장 사이에 접속사를 넣는 버릇이 많이 있었다. 이 책을 보고 그런 문장을 안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접속사만 빼도 글이 훨씬 간결해 지는 것은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실질문맹률 관련해서는 이 책을 비롯하여 여러 작가가 언급을 하는 내용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생이 되는 그 시점에 문장을 보고 이해하는 수준이 최고 정점에 달한다. 그 뒤로는 줄곧 내리막이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수많은 말과 글을 소비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긴호흡의 글을 읽지 않는데 있다. 긴글을 읽어나가는 것은 지속적으로 해야 뇌가 말랑말랑해지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감성적인 한 두마디의 표현으로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도 많은 시대이지만, SNS는 짦고 임팩트가 강한 문장에만 집중한다.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긴 호흡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어휘력을 향상시켜주는 책은 아니다. 요즘은 어휘력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어 초등 국어 어휘 책이 있기도 하고, 어휘력 사전과 같은 어휘력 책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책만 본다고 어휘력이 늘지는 않는다. 다양한 문장을 접해 보며 그 어휘의 쓰임을 경험하는게 중요하다. 그렇게 새로 배운 어휘를 글로 써야 비로소 내 어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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