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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 문학동네 (2019)

gracenmose 2021. 3. 15.

여행의 이유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 그리고 당신을 매혹할 아홉 개의 이야기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 문학동네

목차

추방과 멀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과 관련한 에세이다. 재작년 갔던 여행기를 생각보다 너무 오래 적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쓰기 위해 블로그로 돌아오기도 하고, 소설보다는 김영하라는 분을 좋아하기도 하여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중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중국으로 작업을 위해 출발했다가 입국 심사도 못 받고 추방된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가 본 여행의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인가? 오늘도 내용 일부 발췌와 내 생각을 써 보려고 한다.


p. 16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대충 아무거나 시켜버리는 내 버릇 때문에 피해를 보는 동행들도 없지 않았다.
p. 18
그러니 음식 주문에서 실패를 줄이고 싶다면 모든 분류의 가장 위에서부터 고르면 되고, 재료로는 닭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겉에 뭐가 발라져 있든, 무엇에 재웠든, 속에는 우리가 아는 그 닭고기가 있다. 그러나 자기 여행을 소재로 뭔가를 쓰고 싶다면 밑에서부터 주문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때론 동행 중에서 따라 시키는 사람이 생기고, 그 인상적인 실패 경험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글로 쓸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여행기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같은 경우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먼저 가 본 사람의 경험과 그곳에서 보고 듣고 맛보며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글과 사진으로 먼저 접해 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외에도 어떤 곳으로 여행을 갈 것인지 정할 때, 먼저 여행 후기들을 찾아 본다. 재미있고 흥미있는 경험들을 한 포스팅을 보면 그곳이 하나의 후보지가 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갈 곳을 정하게 되면 그 후에는 그곳을 여행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본다. 

그런 여행기에는 실패한 경험, 고생한 경험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꿀팁이 포함되어 있어서 여행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되는 때가 많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가 말한 것처럼 계획했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 이루어진 여행이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일반인에는 그런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겠지만, 전문 작가의 여행은 특히나 그럴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p. 27
여행을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얻어 돌아와야 한다는 관념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 20세기 후반을 지나며 많이 간단해졌지만 그전까지 여행은 언제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생일대의 고역이었다. 영어 'Travel'이 '여행'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14세기 무렵으로,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단어에는 현대의 우리가 '여행'하면 떠올리는 즐거움과 해방감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노동과 수고, 고통 같은 의미들이 담겨 있을 뿐이다.

여행의 어원을 찾아보면 지금과 같은 즐거움과 해방감이 없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 옛날 이동 수단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이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경우가 없기는 할 것이다. 가고 오는데만해도 수일이 걸리는 그런 여정이 과연 즐거웠을까? 그런 측면에서 현대인들은 너무 좋은 시기를 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랜선을 통해 전세계의 멋진 장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p. 57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역시 작가들은 일반인과 다름을 설명해준다. 그들은 우리보다 사람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그런 결과물로 하나의 인물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p. 64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이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눈에 익숙하여 기쁨과 즐거움 뿐 아니라 슬픔, 고통까지 연상할 수 있는 장소에서의 탈출. 그것이 여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가기만 해도 기분이 들뜨는 가보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짐으로써 잠시 그 짐을 내려놓기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것에서 떠나고 싶어하는데 도대체 코로나는 언제 쯤 사라져서 과거처럼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절이 올까. 그런 시기가 오더라도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는 다니지 못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p. 79
'여행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한 번쯤 받아보는 것이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기억이 나는 거의 없다. 영감이라는 게 있다면 언제나 나의 모국어로, 주로 집에 누워 있을 때 왔다. ....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한국에 있을 때 써 왔다고 했다. 자신의 모국어로 된 환경에서 아주 미세한 감각까지 다 느끼게 되고 그것이 생명력이 있는 작품속 인물이 되는 것. 앞서 발췌한 것처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생각과 영감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p. 97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그후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행장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그 많은 여행 중에서 가장 이상했던 여행은 무엇이었나? 아마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방영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이라는 TV프로그램과 관련한 일련의 여행들일 것이다. ...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이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김영하 작가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바로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다. 여행에 대한 그의 태도는 정말 남달랐다. 글에서 쓴 그대로 그는 행동을 했다. 예를 들어 '경주', '통영'편에서 다른 출연자들이 그곳의 토속 음식을 찾으러 다닐 때 그는 '피자'를 찾으러 간다. 그 피자가 성공하면 맛있는 것을 먹어서 좋은 것이고, 피자가 맛이 없었으면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 에피소드가 되는 그런 부분. 출연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해당 도시 여행을 하고 저녁에 다시 식당으로 모여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 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던 프로그램이다. (경주의 해당 피자집은 유명한 곳이 되어 이제는 웨이팅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김영하 피자편
p. 102
일본의 한 코미디언이 비싼 포르셰를 샀지만 막상 자기가 운전을 해보니 포르셰가 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더라, 그래서 친구에게 포르셰를 운전하라고 시킨 뒤 택시를 타고 따라갔가는 얘기가 떠오른다. 그가 택시 기사에게 저기 가는 저 포르셰가 자기 차라며 정말 멋지지 않느냐며 자랑을 하자, 택시 기사는 어이없어하며 그런데 왜 택시를 탔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보 아니세요? 내 차에 타면 포르셰가 안 보이잖아요?"

바로 앞에 이야기했던 부분과 같다. 알쓸신잡 프로그램이 그에게 가장 독특했던 부분은 따라 다닌 PD들이 촬영한 자신의 모습을 나중에 볼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의 여행은 우리의 시선으로만 보는데, 제 3자가 본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 

목차에도 있는 '노바디의 여행'. 여행은 관광지에서 내가 노바디가 되어 그 속에 묻혀보기 위해 가는 것 같다. 미국 여행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생각해 보면 친구집에서 보냈던 주말과 온전히 우리가 샌디에고에서 사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냈던 에어비앤비에서의 며칠이다. 마치 미국에서 노바디가 되어 그들과 함께 했던 것 같았던 기억. 그런 여행을 또 떠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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