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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 김영하 산문 / 문학동네 (2015)

gracenmose 2021. 4. 10.

읽다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2015년 5월 23일부터 8월 15일까지 눈이 초롱초롱한 50명의 독자들과 함께 문학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김영하가 2015년에 50명의 독자를 초대해서 6번에 걸쳐서 책에 대해서 강연을 했던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실제로 해당 강연에서 했던 것과 글로 옮긴 것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가 책을 어떻게 보고 접근하는지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목차
첫째 날, 읽다 - 위험한 책 읽기

둘째 날, 읽다 - 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
셋째 날, 읽다 - 책 속에는 길이 없다
넷째 날, 읽다 -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
다섯째 날, 읽다 - 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여섯째 날, 읽다 -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p. 11
『왜 고전을 읽는가』의 서두에서 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지금○○○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어 칼비노는 고전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리는데, 하나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첫번째 정의가 고전을 읽지 않은 독자들의 겸연쩍음을 짚었다면 다섯번째 정의는 그것을 사면하고 있습니다.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고전이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는다고 '변명'을 하게 되는 책이지만, 처음 읽는데도 어쩐지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고전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용한 구절 외에도, 고전이라는 것은 이미 읽었다고 생각하는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이 너무나 유명하고, 그 중의 일부 내용들이 간간히 방송이나 글로 노출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보니 고전을 읽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나만 그런지도?) 

 

십여 년 전에 펄벅의 『대지』(Pearl Buck, The Good Earth, 1931)를 읽은 적이 있다. 고전 소설은 왠지 내용이 딱딱하고 재미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이런 고전 소설 같은 경우 표지부터 재미없게 생긴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런데, 읽어보니 완전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영미권 사람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그 당시에도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보통은 1부만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2부와 3부도 모두 연이어서 다 봤던 기억이 있다.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를 넘어서도 그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러한 책인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고전으로는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가 있다. 이 책은 딱히 클라이막스라고 생각될만한 부분이 없어서 두꺼운 책을 힘들게 꾸역꾸역 읽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니 소설의 잔잔한 여운이 머리 속에 강하게 남은 것 같다. 이런 것이 고전의 힘인 것 같다.

 

p. 31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글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힘을 지녔다. 김영하는 독서를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까지 흔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슬퍼할 일은 아니다.

 

p. 57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서점에서 값싸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습니다. 

책을 본다는 것이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전자책으로 많은 컨텐츠들이 옮겨가고 있지만, 활자로 인쇄되는 책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성경?)

 

p. 61
소설은 분명 우리에게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설득력 있고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현실보다 더 현실이라고 믿을 때가 많습니다. 

인문서만 읽다가 요즘은 소설을 보고 있는데, 아주 딱 맞는 말이다. 작가가 묘사해 주는 새로운 세상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 세상이 마치 실제로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공감을 만들어주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글로 옮기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현실을 벗어나 소설 속 세계로 갈 수 있다. 

 

p. 69
네, 그렇습니다. 인간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p. 82
영화는 상영 도중에 일어나서 나가려면 눈치가 보이지만 책은 혼자 읽는 것이어서 잠깐 책장을 덮는다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됩니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요.

맞는 말이다. 때로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것인가 끝없이 고민하면서 책을 붙잡고 있다. 조금만 더 읽어보자 하면서 완독을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것이 끝이 아니고 내 생각을 곁들여 보는 것까지 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블로그는 그것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p. 104
그러나 독서는 다릅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최근 읽었던 『스웨덴 기사』를 통해서 18세기 초의 스웨덴이라는 얇은 세계가 내면에 겹쳐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완독을 한 『달러구트 꿈백화점』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꿈을 파는 가게에서 꿈을 사서 꾸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세계가 생겼다. 혼자서는 생각하기 힘든 상상의 세계를 책이라는 통로를 통해 쉽게 얻어갈 수 있으니, 소설이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 아닌가.

 

p. 141
오르한 파묵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소설은 두번째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이다. 더 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p. 183
책의 우주도 이와 비슷합니다. 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개의 책은 다른 책이 가진 여러 힘의 작용 속에서 탄생하고, 그 후로는 다른 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도서관은 영향을 주고받는 정도가 큰 책들끼리 분류하여 모아놓습니다. 

최근에는 소설을 많이 보고 있다. 소설로 오게 만든 책 중의 하나가 이 책이다. 이 책에서 소설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니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세계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서 다른 책으로 뻗어나간다.

 

p. 208
소설을 읽는 것은 바로 이 광대한 책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하나의 책을 통해 그 우주에 들어갑니다. 책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다른 책으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소설과 소설, 이야기와 이야기, 책과 책 사이의 연결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로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러면서 독자는 자기만의 책의 우주, 그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게 됩니다.

앞의 이야기와 동일하다. 책은 세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고 다른 책으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다. 책을 통해 현실을 벗어날 수도 있고, 현실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게하면서 나만의 우주를 조금씩 더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더니, 고전을 읽어보라고 아내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슬쩍 내밀며 권유를 했다. 그런데 아주 두꺼운 2권의 책을 보니 왠지 겁이 난다. 이 책은 완독이라는 목표까지 가기 위해서 유혹을 이겨내기가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분명 『분노의 포도』와 같이 소설 속의 세계를 강하게 남겨주리라 생각하고 끝까지 참고 읽어 볼 생각이다. (아직 첫장도 넘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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