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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이야기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 김진애 / 다산초당(2019)

gracenmose 2021. 2. 20.

우리나라의 도시의 특징은 아파트이다. 전국의 어느 도시를 가도 고층의 아파트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 생각하는 곳이 '충북 단양'이다. 단양군의 총인구는 3만 명, 그리고 그중 단양읍에 거주하는 인구는 1만 명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그곳에 가도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큰 도시에 있는 아파트들과 비교하면 중층이지만, 북단양IC에서 나와 도담삼봉을 지나 단양읍으로 향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파트이다. 물론 그곳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너무 한정적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전 포스팅에서 아파트에 대해 쓰고, 읽고 있던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그런데 소름 끼치게도 바로 직전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아파트 공화국 • 단지 공화국'에 대한 내용이 펼쳐졌다.


'아파트는 과거를 등진, 철저하게 새로운 사회의 출현과 연결됐다. 이는 결국 '탈피하다'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대로 '껍질을 벗은' 사회였다.' -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시대가 끝나기는 커녕 좀 더 그악한 아파트 단지 공화국이 되어갈 것이다. 도시 공공 공간 환경에 대한 대폭적인 공공투자가 없다면, 그래서 지금과 같은 취약한 도시 환경 상황이 지속된다면 말이다' - 박인석, '아파트 한국사회'

이 내용이 나오는 챕터의 제목은 '욕망과 탐욕 : 나도 머니 게임의 공범인가?'이다. 도시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고 그런 '머니 게임'의 대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아파트'인 것이다. 부동산의 핵심이기도 하고. 아파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 특히 대규모 단지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다산초당

 


아파트 단지가 도시에 미치는 악형향 - p. 221
첫째, 길이 없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길이 줄어든다. ... 재개발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동네를 실핏줄처럼 엮던 골목길들이 모두 단지 안에 포함되어버리고 단지를 에워싸는 큰 도로만 생기는 것이다. ⋯⋯ 이 보행로는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쉽게 오픈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동네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길이 뚝 끊겨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
둘째, 스트리트 라이프(street life)가 사라진다. 길이 줄어듦으로써 생기는 가장 큰 부작용이다. ⋯⋯ 동네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자연스레 뒤따르는 현상이다.
셋째, 이것은 아파트 공통의 문제인데, 오직 주거로 한정되는 단일 용도라서 변화에 대응하는 융통성이 부족해진다. ⋯⋯
넷째, 한번 대단지 개발이 일어나면 그 파급력이 워낙 커서 시장을 교란한다. ⋯⋯
다섯째, 아파트 단지는 사는 집의 계급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느 지역의 어느 단지냐뿐 아니라, 어느 브랜드냐, 어느 동이냐, 평수는 얼마냐, 소유냐 임대냐, 민간 임내냐 공공 임대냐가 고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좋은 의미의 소셜 믹스(social mix)는 커녕, 계층적 구분과 선 긋기가 지나치게 공공연하게 보인다. ⋯⋯
여섯째, 획일성 문제다. 대규모 단지 공급은 획일화를 피하기 어렵다. ⋯⋯

역시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하나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겉으로 드러나 버리는 이러한 계급의 구분이다. 이런 것들이 너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뉴스에도 나오고 하다 보니 친구들과는 이런 것에 상관없이 아무렇게 뒤섞여 놀아야 하는 어린 아이들도, 특정 단지에 사는 아이들끼리만 모여 놀고 임대에 사는 친구와 거리를 두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도시적 삶을 구성하는 아파트, '도시형 아파트' - p. 232
⋯⋯ 나는 '아파트'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 다만 '단지형 아파트'에 대해서는 무척 우려한다. 아파트 내부 설계에 상당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듯이, 아파트 건물 구성 자체가 단지형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라 '도시형 아파트'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
첫째, 길을 최대한 많이 만든다. 있는 길을 없애는 짓을 최소화 한다. 사람들이 다니게 만들고 차량의 흐름을 퍼지게 만든다. ⋯⋯
둘째, 길을 따라서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라 도시형 아파트를 만든다. 도시형 아파트란 '가로형 아파트'다. 단지 안에 우뚝우뚝 서는 게 아니라 길을 따라 들어서는 아파트다. 가로형 아파트는 길에서 바로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 고층 아파트의 저층 부분에도 상가와 사무실과 공동 시설을 둔다면 자연스럽게 가로형 아파트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유럽 도시에 가서 보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바로 가로형 아파트다. ⋯⋯
셋째, 개발 단위를 작게 나눈다. 대규모 단지라 하더라도 실제 개발 단위는 여러 부분으로 나눈다. 이왕이면 건물 단위까지 ⋯⋯
넷째, 특히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할 때 되도록 개발 단위를 작게 나누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개발되도록 한다. 이렇게 해 놓아야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재건축이 필요해질 때도 시장을 교란하지 않고 차근차근 추진할 수 있다. ⋯⋯
다섯째, 한 건물에 여러 가지 주택 유형을 섞어 놓는다. ⋯⋯
여섯째, 아파트 단지에 담장을 치지 않는다. 담장이 없으면 외부 사람이 마구 드나들 텐데 어떻게 하냐고? 담장이 필요 없으려면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상상해보라. 금방 답이 나온다. 투명 담장, 식재 담장으로 바꾸기만 해도 달라진다. 보는 이들의 마음도, 길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이전 포스팅에서 지적한 아파트에 대해서만 집중하여 책을 리뷰했지만, 이 책은 12가지 콘셉트로 도시를 보고 해석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도시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이런 책을 보면 주변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서울은 과연 어떤 도시가 되는 것이 맞을 것인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자라서 컸을 때에도 여전히 하늘 높이 솟아 일부 사람들에게만 볼 수 있는 하늘을 허락하는 아파트에 여전히 매진할 것인가? 단지 아파트 공급만을 위한 신도시 개발이 아닌, 사람답게 사는 그러한 도시가 되기 위한 신도시 정책이 이어졌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가지 콘셉트를 언급하고 마친다.

'열두 가지 도시적 콘셉트'란?
콘셉트 1. 익명성
콘셉트 2. 권력과 권위
콘셉트 3. 기억과 기록
콘셉트 4. 알므로 예찬
콘셉트 5. 대비로 통찰
콘셉트 6. 스토리텔링
콘셉트 7. 코딩과 디코딩
콘셉트 8. 욕망과 탐욕
콘셉트 9. 부패에의 유혹
콘셉트 10. 이상해하는 능력
콘셉트 11. '돈'과 '표'
콘셉트 12. 진화와 돌연변이
 

아파트 단지 담장과 울타리, 꼭 자신들만의 요새와 성을 이루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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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2015)

며칠 전 소개를 했었던 '공간을 위한 공간'의 저자 건축가 유현준이 인문학적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기술을 한 책이다. 책이 출간된 순으로는 이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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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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